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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by 경제 사다리 2026. 4. 27.

안녕하세요?
독서기록가 정소장입니다.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유럽문학중에서 영국문학에 대하여 기록 정리해봅니다.

오늘은 망설이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고전 이야기 햄릿에 대하여 작성합니다.

 

어느 날, 한 나라의 왕자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햄릿입니다. 덴마크의 왕자였던 그는 원래 왕궁 안에서 존경받는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서 살아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선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햄릿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더 큰 충격이 이어집니다. 어머니 거트루드가 남편의 죽음이 채 잊히기도 전에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클로디어스는 덴마크의 새로운 왕이 됩니다.

햄릿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재혼할 수 있는지, 삼촌은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왕좌에 앉을 수 있는지, 왕궁 사람들은 왜 이 상황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햄릿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 의심과 배신감이 뒤섞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모두 위선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던 어느 밤, 햄릿은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게 됩니다. 유령은 충격적인 말을 전합니다. 자신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단순한 슬픔의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동시에 복수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됩니다.

하지만 햄릿은 곧장 칼을 들고 클로디어스를 향해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는 멈춥니다. 생각합니다. 의심합니다. 그리고 괴로워합니다.

정말 유령의 말이 사실일까?
복수는 정의로운 일일까?
내가 지금 행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사람은 진실을 알았을 때 반드시 행동해야 할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햄릿> 은 단순히 왕자의 복수극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진실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는지, 선택 앞에서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삶의 고통 앞에서 어떤 질문을 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햄릿> 은 오래된 고전이지만 낡은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결정해야 할 순간 앞에서 망설입니다. 분노하지만 쉽게 행동하지 못하고, 진실을 알면서도 현실의 복잡함 때문에 멈칫합니다.

햄릿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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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복수해야 하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던 햄릿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밤,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유령은 햄릿에게 말합니다. 자신을 죽인 사람은 바로 동생 클로디어스라고 말입니다. 클로디어스는 형의 왕관과 아내, 그리고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죄를 저질렀습니다. 햄릿에게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는 진실이 주어진 셈입니다.

보통의 복수극이라면 이 장면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갑니다. 아들은 원수를 향해 달려가고, 악인은 벌을 받으며, 복수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햄릿> 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햄릿은 복수를 결심하면서도 계속 멈춰 섭니다. 그는 유령의 말을 의심합니다. 정말 저 존재가 아버지의 영혼일까, 아니면 자신을 파멸로 이끌려는 악령일까. 클로디어스가 정말 살인자인지 확인하지 않고 복수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햄릿의 모습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왜 빨리 행동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망설임 때문에 햄릿은 인간적인 인물이 됩니다.

햄릿은 감정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분노하고 있지만, 그 분노가 진실인지 확인하려 합니다. 그래서 햄릿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왕궁에 온 배우들에게 아버지의 죽음과 비슷한 장면이 담긴 연극을 공연하게 하는 것입니다.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그 연극을 보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봅니다. 만약 그가 죄가 없다면 아무렇지 않을 것이고, 만약 죄가 있다면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연극이 시작되고, 무대 위에서는 왕이 독살당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 순간 클로디어스는 크게 당황합니다. 그는 끝까지 연극을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햄릿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여기서부터입니다. 햄릿은 진실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바로 복수하지 못합니다.

클로디어스가 혼자 기도하는 장면에서 햄릿은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아무도 없는 순간입니다. 칼만 들면 복수를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또다시 멈춥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클로디어스가 지금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고 있다면, 이 순간 죽이는 것이 과연 진정한 복수일까. 그가 회개한 상태에서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었는데, 살인자인 클로디어스가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복수가 아니지 않을까.

이 장면에서 햄릿의 복잡한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는 악인을 처벌하고 싶지만,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의와 죄, 영혼과 구원, 복수와 도덕의 문제까지 함께 고민합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늦어지고, 늦어진 행동은 더 큰 비극을 부릅니다.

햄릿은 약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는 사람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햄릿을 우유부단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다가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햄릿을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라고 봅니다. 그는 폭력 앞에서 무작정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을 확인하려 했고, 행동의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그 망설임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유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햄릿과 닮아 있습니다.

분명히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쉽게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말해야 할 진실이 있지만 관계가 깨질까 봐 침묵하기도 하고, 잘못된 일을 보면서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모른 척하기도 합니다. 분노는 있지만 확신이 없고, 확신은 있지만 결과가 두렵습니다.

햄릿은 바로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햄릿> 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깊은 심리극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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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사느냐, 죽느냐”라는 말에 담긴 인간의 고통

 

<햄릿> 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문장은 너무 유명해서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단순히 죽음을 고민하는 대사로만 이해하면 부족합니다.

햄릿은 이 독백에서 삶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 견디는가. 모욕과 배신, 억울함과 불안, 사랑의 상처와 권력의 폭력 속에서도 왜 사람은 쉽게 삶을 놓지 못하는가. 햄릿은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집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존경하던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빨리 재혼했습니다. 왕좌에는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보이는 삼촌이 앉아 있습니다. 사랑했던 오필리아와의 관계도 흔들리고, 왕궁 전체는 감시와 의심으로 가득합니다.

햄릿에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삶 자체를 고민합니다.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고통의 끝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인간은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두려움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이 알 수 없음이 햄릿을 붙잡습니다.

삶은 고통스럽지만, 죽음은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차라리 익숙한 고통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햄릿의 독백은 바로 이 인간의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이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비슷한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햄릿처럼 왕궁의 음모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무거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가족 문제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고, 경제적인 불안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노력했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아 허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묻게 됩니다.

이 시간을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이 고통에도 끝이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할까.
앞으로의 삶은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햄릿의 독백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을 쉽게 주지 않기 때문에 더 깊게 남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고통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하고, 얼마나 두려워하며,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햄릿> 은 사건보다 마음이 중요한 작품입니다.

햄릿은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계속 생각합니다. 생각은 인간을 깊게 만들지만,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위험한 경계를 보여줍니다.

생각 없는 행동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행동 없는 생각도 위험합니다.

햄릿의 비극은 이 균형이 무너진 데서 시작됩니다. 그는 진실을 알았고, 복수를 결심했지만, 너무 많은 생각 속에서 행동의 시기를 놓칩니다. 그리고 그 지연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선택지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결정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실패할 이유를 먼저 떠올리고,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상대의 반응을 걱정하고, 기회를 잡기 전에 위험부터 계산합니다.

그런 점에서 햄릿은 아주 오래된 인물이지만 동시에 매우 현대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지나치게 생각하고, 깊이 고민하며, 확신을 얻기 전까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우리 안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햄릿> 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명한 명대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망설임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순간에 멈춰 서는지,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 나는 생각과 행동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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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왕궁 안의 관계가 만든 더 큰 비극

 

<햄릿> 의 비극은 햄릿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죽음, 한 사람의 욕망, 한 사람의 침묵이 왕궁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고, 각자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흔듭니다.

먼저 클로디어스를 보아야 합니다. 그는 햄릿의 삼촌이자 새로운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왕좌를 정당하게 얻은 사람이 아닙니다.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으며, 형의 아내였던 거트루드와 결혼했습니다.

클로디어스는 악인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단순한 악인만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며 괴로워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왕관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죄책감은 있지만 권력을 포기할 용기는 없습니다.

이 모습은 인간 욕망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손에 넣은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명예, 자리, 돈, 관계, 권력처럼 한 번 쥔 것을 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클로디어스는 바로 그런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역시 중요한 인물입니다.

햄릿에게 어머니의 재혼은 단순한 결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너무 빨리 지운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햄릿은 어머니를 보며 사랑과 신뢰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깨닫습니다.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의 범죄를 알고 있었는지는 작품 속에서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햄릿이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삼촌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햄릿의 분노는 클로디어스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도 깊은 상처를 느낍니다.

사랑했던 오필리아와의 관계도 비극적입니다.

오필리아는 햄릿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오빠 레어티스의 말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햄릿의 사랑을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왕자의 사랑은 진심이어도 정치적인 이유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오필리아는 햄릿을 사랑하지만 가족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햄릿에게서 멀어집니다.

햄릿 역시 오필리아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는 미친 척을 하며 오필리아에게 차갑고 모진 말을 합니다. 자신의 복수와 혼란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버지마저 햄릿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무너져 내립니다. 결국 그녀의 죽음은 『햄릿』의 비극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특히 안타깝습니다.

그녀는 권력을 탐한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를 해치려 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왕궁 안의 권력 다툼과 남성들의 복수, 감시와 의심 속에서 점점 자기 목소리를 잃어갑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여동생이며, 누군가의 연인으로 존재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공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단순한 조연이 아닙니다. 그녀는 거대한 비극 속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폴로니어스는 오필리아의 아버지이자 왕의 신하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혜롭다고 믿고, 왕궁 안의 일을 조종하려 합니다. 햄릿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딸 오필리아까지 이용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햄릿에게 살해당합니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또 다른 비극을 부릅니다. 그의 아들 레어티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레어티스와 햄릿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복수를 원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방식은 다릅니다.

햄릿은 오래 생각하고 망설입니다.
레어티스는 빠르게 행동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복수의 두 얼굴을 보여줍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행동을 놓치고, 너무 빨리 행동하면 판단을 잃습니다. 결국 두 방식 모두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햄릿> 의 왕궁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서로를 감시하며, 권력을 위해 관계를 이용합니다. 사랑은 의심으로 변하고, 가족은 상처의 원인이 되며,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습니다.

이것이 <햄릿> 이 보여주는 인간 사회의 어두운 진실입니다.

한 사람의 죄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클로디어스의 살인은 햄릿을 무너뜨리고, 햄릿의 혼란은 오필리아를 무너뜨립니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은 레어티스의 복수를 부르고, 결국 모두가 파국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두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극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거짓말, 감춰진 죄, 말하지 못한 진심, 늦어진 선택들이 쌓이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듭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lt;햄릿&gt;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오래된 왕자의 비극이지만,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햄릿은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는 왕자이고, 왕궁 안에서 살며,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거대한 비밀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그는 상처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믿었던 세계가 무너진 사람입니다.
그는 진실을 알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너무 많이 생각해서 더 괴로워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햄릿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햄릿은 멀리 있는 고전 속 인물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망설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끝내야 할 관계를 붙잡고, 시작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침묵합니다. 때로는 생각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신중함이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햄릿은 그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만 하다가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복수와 정의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햄릿> 이 위대한 이유는 정답을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쉽게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햄릿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단순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클로디어스는 악인이지만 인간적인 약함도 가지고 있고, 거트루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완전히 악하다고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필리아는 약하지만 순수하고, 레어티스는 충동적이지만 그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처럼 <햄릿> 의 인물들은 모두 복잡합니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현실의 인간과 닮아 있습니다.

고전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래된 문체와 상징적인 대사 때문에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햄릿> 을 읽을 때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해석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햄릿의 마음을 따라가면 됩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사랑하는 사람과의 엇갈림, 진실을 알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괴로움,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런 감정들은 시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햄릿> 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닙니다.

젊을 때 읽으면 햄릿의 분노와 혼란이 먼저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클로디어스의 욕망, 거트루드의 약함, 오필리아의 침묵, 레어티스의 충동까지 보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인물이 이해되고, 읽을 때마다 다른 질문이 남는 작품입니다.

 

 <햄릿> 은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왜 망설이는가.
왜 진실을 알고도 움직이지 못하는가.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
왜 죄를 알면서도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왜 삶이 고통스러워도 계속 살아가는가.

이 질문들이 <햄릿>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햄릿> 은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삶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는 사람에게, 생각이 많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인간관계와 상처 속에서 마음이 복잡한 사람에게 이 작품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고. 때로는 약하고, 흔들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햄릿의 비극은 끝났지만, 햄릿이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 유럽문학 영국문학중 햄릿에 대하여 작성했습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